2009년 06월 03일
[슈디트]마노레이
| 슈디트는 물끄러미 상대를 관찰했다. 이름은 장량. 입 안에서 굴려지는 발음이 묘한 사내는 글쎄, 친구라고 하면 적당할까-.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괜찮을까, 묘한 사람이다. 딱, 그 입에 굴려지는 이름만큼. “괜찮아?” 괜찮아 보인다. 정신이. 괜찮지 않아 보인다. 몸이. 애매한 간극은 판단을 더디게 해, 그저 본인에게 물어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. ………괜찮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할 사람이지만. “괜찮아.” -역시나. 장량이 괜찮아 진 이유를 알고 있다. 괜찮지 않은 이유는 괜찮아 진 이유일 것이다. 마노 레이, 기펠세이먼의 대장. 부드럽고 강한 사람, 유약하고 굳건한 사람. 장량은 그 사람과 군신의 관계를 맺었다. 의지는(依支)는 의지(意志)가 되어 그 둘을 강건하게 만들 것이다. 관계적으로나, 심적으로나. 희망을 죽여가던 사람이 다시 살아가려는 것은 탐탁한 일이다. 자존심은 상하지만 – 옆에서 힐러 하나가 백날 떠들어도 관계성 하나엔 못 미치는 것이. - 솔직히 정신적인 문제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. 특히 군신유의라던가 충의라던가, 알고는 있지만 아득히 먼 이야기다. 머리로 알지만 가슴으로 깨치지 못했다. 그것 역시 장량과 슈디트의 많은 차이 중의 하나일 것이다. “…괜찮으면 그냥 쉬어.” 상대는 정말로 괜찮아 보인다. 조금 쉬면 조금 더 괜찮아 질 것이다. 자신은 분명히 말하지만, 오지랖이 넓은 성격은 아니다. 라고 슈디트는 생각한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장이라는 사람의 집무실 앞을 서성이는 것은 또 어쩐 일일까. 어쩌면 지루함, 어쩌면 호기심, 그리고 또 다른 어떤 것. “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.” 문을 잡자마자 느끼는 것은 묘한 불안감이다. 미래를 조금 볼까 하고, 10초 정도 생각했던 것 같다. 그러나 조금 귀찮기도 해서 손 위치를 바꾸어 조용히 노크 한다. “….무슨…일이죠?” 낮게 늘어졌던 외침이 뚝. 끊겼다. 당장 일어날 10초후의 미래 같은 건, 읽지 못하니까….. 하면서도 슈디트는 미래를 향해 신경을 집중한다. 집중할 뻔 했다. “문 밖에 있는 cutie는 어떤 cutie야? 문 좀 열어줘!” -라는 밝은 듯 한 소리와. “열지 마.” 라고 하는 진중한 목소리. “열어줘어어어!” -하고, 다시 말하는 목소리와. “열지 마.” 하고 또 다시 말하는 목소리. 대체 어쩌라는 거야, 하며 문을 노려본다. 그러나 슈디트가 문고리를 잡고 힘을 준 것은 글쎄, 또 무슨 이유였을까-. 알 수가 없다. “….아.”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분홍.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의 색. – 처연한 빛이다. 하얗고, 가느다랗고-. 그러나 단련된 빛이 보이는 청년 하나가 훅 스치고 지나간다. 달려든다. 방안을 흐드러지게 메우는 것은 서류철이고, 그 중에서도 슈디트는 버터 바른 토스트의 냄새를 맡았다. "고마워 Cutie." "큐......" 살다 살다 별 소리를 다 듣는다. 고 슈디트는 눈을 돌렸다. 이미 꽃분홍의 화사한 청년은 저만치를 달려나가 있고,- 매우 즐거워 보인다.- 눈 앞의 장량은 무심한 얼굴로, 그러나 고뇌를 감추지 않은 채 한 숨을 쉰다. “미안….” “괜찮아.” “……. 상황 파악아 안 돼서 그러는데, 무슨 일인지 물어 봐도 되?” “대장님이 식사를 거부하고 도망가셨어.” “……………” “…….” “아.” 슈디트는 다시 눈을 돌린다. 아마 그가 마노 레이, 기억을 잃는 대장일 것이다. 저 멀리에서 사뿐히- 날렵하게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. “미안해, 일에 참견 좀 할게.” “…….” 장량은 말이 없다. 슈디트는 그걸 동의라고 생각했다. 뛴다. 달린다. 튀어 오르듯이, 휘말려 들어가듯이. 바람이 거세어 등골이며 옷자락을 휘감아 들었다. 등 뒤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슈디트는 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, 폐가 찢어질 듯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 건 아니었다. 숨이 찬다. 뱉어내고 마시는 그 숨결에 도리어 숨이 막히는 듯 하다. 저 사람은 발에 날개라도 단 걸까. 정말로, 엄청나게 빠르다. 몇 번 넘어질 듯 휘청-. 하다가도 재빠르게 중심을 잡아 앞으로 튀어나간다. 아니, 앞. 약간 오른쪽, 아니면 왼쪽으로 휙. 몸을 돌려서. 저렇게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. 잡을 수가 있을 리 없지. 헐떡이는 숨을 뱉는다. 머리가 흔들려 멀미가 나고, 시야는 어찔어찔하게 색체를 잃어간다. 당장 산소를 마셔야 하는 몸뚱이는 더 이상 사고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. 슈디트는 비틀 거리는 무릎을 꾹 누른 채로 숨을 몰아 쉰다. 그때였을까? 자신의 발끝, 왼쪽으로 조금 더 멀리에, 다른 발이 스윽 다가온다. “응? Cutie. 왜 날 쫓아오는 거야?” 슈디트는 대답대신 옷자락을 쥐었다. 옷자락은 서늘하고, 빳빳하고, 적당히 부드러워서, 기분이 좋았다. “아, 잡혔다.” 어째서 만개한 진달래 꽃. 화사한 봄의 빛. 그런데 왜 이렇게 처연한 걸까. 손 안에서 빠져나가려는 옷자락을 슈디트는 조금 더 세게 쥔다. “그런데 Cutie….이건 좀 놔주면 안될까?” “도망가실 거잖아요.” “도망 안 갈게.” “못 믿습니다.” 짤막한 대화가 오간다. 슈디트는 헐떡이는 숨을 억누르려고 애를 쓴다. 상대방은- 지치지도 않았는지, 빙글 빙글, 화사한 웃음뿐. “cutie는 누구야?” “지나가는 힐러요.” “특이한 이름이네.” “이름을 말해 보았자, 내일이 되면 잊혀질 테니까요.” “아까 키 큰 cutie가 내가 기펠세이먼의 대장이라고 했어. Cutie도 기펠세이먼?” -….아. 장량아. 고생하는구나. “네, 일단은요. 하지만 전 누구와는 달라서요-. 존중은 하겠지만 복종은 하지 않습니다. 그리고 건강문제에 대해서는 존중도 하지 않을 겁니다.” “….” “그러니까 일단 아침 드세요.” 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= 뱀발: “아침 안 먹는다고 죽진 않아.” “죽지는 않죠.” “그리고 왜 계속 쭈그려 앉아 있는 거야?” "힘 다 떨어져서요."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|
# by | 2009/06/03 21:15 | 트랙백 | 덧글(1)



